친구랑 해봤는데 의義 상하기 딱 좋은 것 같다고 하지말라던 게임. 반년 전 쯤의 기억을 잊었는지 어제 술집에서 신사장이 그 게임을 제안했다. '당연하지~'의 원조 '단점 말해주기' 게임. 신사장(28), 디슨(27), 세디(26) 그리고 나.
신사장이 먼저 나의 단점에 대해 말했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불 붙은 내 몸에, 옆에서 고개 끄덕끄덕하던 세디의 머리에서는 끄덕일 때마다 휘발유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신사장이 말한 단점이 허망하게도 내 패배의식 속의 급소를 가격한 것은 아니었다.
충격이 컸던 이유는 내가 그러지 않으려 애써야겠다며 생활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던 좌우명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사람을 경멸하듯 보아왔던 내가 그런 사람이다고 신사장은 말하고 있었고, 선배 말이라 그냥 듣고 있는 것 뿐이었는지 몰라도 세디는 끄덕끄덕했다.
다짐 같은 것은 하지 않는 편인 나이지만, 그 술기운에서도 사람이 앞에 있으면 절대 단점을 말하지 않아야겠다는 맹세까지 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고, 그 시점 이전에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잊어버렸지만, 그 맹세는 메아리친다. 사람을 평가하여 단점을 말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구나. 칭찬에 인색한 세상, 말 조심해야겠다. 평소 장난으로 서로의 험담을 주고받던 신사장에게 들어도 이런 기분인데...
다른 단점을 제쳐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척 하지 말라(이걸 욕으로 번역하면 정말 기가 막힌데)고 쏟아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에게도 하나 말해주라고 했지만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나 역시도 멎도 모르므로.. 그 동안 이 친구에 대한 믿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나의 18번,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가 술집에 울려퍼졌다.
후배들에겐 말 못할 괴로움도 山형이나 친구에겐 토로하곤 했는데, 누굴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괴로움도 혼자만의 몫이어야 하는가. 멋진 모습을 지닐려면 삶은 외롭고 고독하기만 할텐데, 믿음은 허울좋은 부조리 속인가, 세상은...
신사장은 단점말하기게임의 영향을 내 반응으로 보고싶어했는지 모른다. 후배들에게 먼저 말해버리고 일기를 쓰는 거지만, 이 게임은 절교하고 싶은 사람과 하기에 딱 알맞은 것 같다. 평생 그 어느 코메디를 보고도 단 한번도 웃으신 적 없다던 경이 아버지께서 '당연하지~' 게임을 보고 웃으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수정해도 수정해도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