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Feb, 2005

단점 말해주기 게임

머시라고 조회 수 3833 추천 수 0 목록
친구랑 해봤는데 의義 상하기 딱 좋은 것 같다고 하지말라던 게임. 반년 전 쯤의 기억을 잊었는지 어제 술집에서 신사장이 그 게임을 제안했다. '당연하지~'의 원조 '단점 말해주기' 게임. 신사장(28), 디슨(27), 세디(26) 그리고 나.

신사장이 먼저 나의 단점에 대해 말했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불 붙은 내 몸에, 옆에서 고개 끄덕끄덕하던 세디의 머리에서는 끄덕일 때마다 휘발유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신사장이 말한 단점이 허망하게도 내 패배의식 속의 급소를 가격한 것은 아니었다.

충격이 컸던 이유는 내가 그러지 않으려 애써야겠다며 생활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던 좌우명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사람을 경멸하듯 보아왔던 내가 그런 사람이다고 신사장은 말하고 있었고, 선배 말이라 그냥 듣고 있는 것 뿐이었는지 몰라도 세디는 끄덕끄덕했다.

다짐 같은 것은 하지 않는 편인 나이지만, 그 술기운에서도 사람이 앞에 있으면 절대 단점을 말하지 않아야겠다는 맹세까지 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고, 그 시점 이전에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잊어버렸지만, 그 맹세는 메아리친다. 사람을 평가하여 단점을 말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구나. 칭찬에 인색한 세상, 말 조심해야겠다. 평소 장난으로 서로의 험담을 주고받던 신사장에게 들어도 이런 기분인데...

다른 단점을 제쳐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척 하지 말라(이걸 욕으로 번역하면 정말 기가 막힌데)고 쏟아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에게도 하나 말해주라고 했지만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나 역시도 멎도 모르므로.. 그 동안 이 친구에 대한 믿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나의 18번,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가 술집에 울려퍼졌다.

후배들에겐 말 못할 괴로움도 山형이나 친구에겐 토로하곤 했는데, 누굴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괴로움도 혼자만의 몫이어야 하는가. 멋진 모습을 지닐려면 삶은 외롭고 고독하기만 할텐데, 믿음은 허울좋은 부조리 속인가, 세상은...

신사장은 단점말하기게임의 영향을 내 반응으로 보고싶어했는지 모른다. 후배들에게 먼저 말해버리고 일기를 쓰는 거지만, 이 게임은 절교하고 싶은 사람과 하기에 딱 알맞은 것 같다. 평생 그 어느 코메디를 보고도 단 한번도 웃으신 적 없다던 경이 아버지께서 '당연하지~' 게임을 보고 웃으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수정해도 수정해도 찜찜하다..

3
profile

신사장

February 15, 2005
*.131.42.33

살다보면 문뜩, 나자신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나를 만나게 된다.
하물며,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이해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거야말로 완벽한 오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들은 살아가는 동안에 자주 깜박잊어버리곤 한다.
이러한 건망증때문인지 세상 만물을 나의 관점으로 한정시키려는 오류를 자주 범하게 되는가 보다.

<<다른 단점을 제쳐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척 하지 말라(이걸 욕으로 번역하면 정말 기가 막힌데)고 쏟아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에게는 좋은 지적이라 고맙다. 덴당~
욕으로는 어떻게 번역되는지가 더 궁금한데?.. 역시 덴당~



'단점 말해주기'게임 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단점 지적해 주기'가 내 의도와 좀더 가까울것 같다만,
뭐 구차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핑계아닌 해명을 하자면 두가지만 말하고 싶은데~

먼저,
개인적으로 내가 '단점 지적해 주기'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있었는데~
'의義 상하기 딱 좋다' 고 했던건 진심이 아니라 농담이었지~!
나는 너도 이것을 좋게 생각하는줄 알았거든..
그래서 네가 단점지적해 주기에 소극적일 때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단점 지적해 주기'에대한 서로의 생각에 오해가 있었던듯 싶다.



다음은
내가 그때 네게 했던 지적에 대한 것인데,
그날 내가 네게 했던 말들은
너를 통해 나 스스로에게 하는 지적이었다.
네가 실질적으로 어느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판단근거가 없었음에도
그러한 이야기를 했던것은
작년 2학기 내내 영어공부 한번 하지 않고, 겨울 방학들어서도 고민만 하면서도 한심하게 시간만 보내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충고였음을 말해주고 싶다.
그날 '단점 지적해 주기'를 제안하고 고집한 이유도 최근 나의 개으른 생활태도에
누군가가 따끔한 일침을 가해주기를~,
그래서 그 충격으로든 뭐든간에 내 생활에 뭔가 변화를 꾀해 볼 욕심이었던것 같다.

이런걸 정신분석의 방어기제에서는 '투사'라고 하더라,
우리가 살면서 너무나 싶게 빠지는 그러면서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정신적 함정들이라고..


나는 너많큼의 글재주가 없기에 머리속에서 조각난 영화 필름처럼 빙~빙 도는 생각들을 어떻게
풀어내야할 지 그냥 답답하다.


솔직히, 이렇게 여러말 안하고 그냥 웃으면서 한마디로 해주고 싶은데~ !!

"좃~! 까 !! " 라고...


근데 이게 글로 전달 될때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뉘앙스가 천지 차이라~
(은근히 그러면서 쓸말 다 쓰고있다~. ^--------^)


마지막으로 그날 너의 감정들을 믿음에 대한 허망함이라든가 배신처럼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 좋겠다.
그날 술자리에서의 단점 지적해 주기 사건(?)에서의 내 오바는 미안하다. !!

나는 그 사건(?) 전에도 신사장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신사장이다. 너도 마찮가지고..

밥 맛나게 처묵고, 목요일 세미나 준비 잘 해라~



수정해도 수정해도 찜찜하다~ 나도 ㅋㅋ
profile

Droopy

February 15, 2005
*.131.132.170

움...

저희 아부지... 예전 유머 일번지 보고는 웃으셨는데...

함께 TV 앞에 앉아.. 쓰리랑 부부와 여로를 보며 함께 즐거워 했었는데... ^^;;;
profile

머시라고

February 15, 2005
*.131.132.175

그럼 네가 유머 일번지 이후에 웃으시는 거 처음 봤다고 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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