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Sep, 2009

정호승 - 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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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값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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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굿바이, 사요나라

하늘이 오늘도 어김없이 낮고 침침합니다. 요즘 쭈욱 그래왔습니다.
해질녘이면 일어나는 구름해일이 서쪽 태평양에서부터 냉기를 몰고 오면, 하루종일
애써 데워놓았던 땅의 온기는 힘도 못쓰고 식어갑니다.

내일의 생존을 확신할 수 없다..
전에도 그렇게 쓴 일이 있었는데요, 오늘 아침에 아픈 왼쪽 어깨에 견공犬公을 내 나이만큼
얹고서 끙끙대며 책상에 앉았다가 - 이 견공들은 노동이 무리될 때마다 한마리씩 늘어나더니,
꼭.. 일이 없고 쉬는 날을 잘도 찾아서는 아주 떼거지로 몰려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고는 넵따 뒷통수를 까인듯 어질거려졌습니다.

죽음이 주는 두려움보다 내 에돌아 살아온 걸음의 자취가 더 두려운.

쉽게 살았다는 것도 아니고, 대강 살았다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성심성의껏 열렬히 살아간다고 해도, 과연 내가 밥값이나 하고 살았나.. 하는 부담은
아직도 목구멍 언저리에서 생목 앓듯이 미심쩍습니다.

내일모레면 시월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턱없이 감상적이 되는 것이다.. 낼름 핑곗거리를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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