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Sep, 2009

예이츠 -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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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ake Isle of Innisfree /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William Butler Yeats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s 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r'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들이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라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색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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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갈래길을 이리저리 싸돌아들다가 간발의 차이로 겨우 멈춰선 꼭대기..
때로는 생각에 치이고 생각에 소화불량되어 밤새도록 뒹굽니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그 분은 '아름다운 마무리란 내려놓음'이라고 하셨고
'비움'이라고 하셨습니다.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일주일에 몇 번, 해질녘에 집을 나섭니다.

때로는 이 동네를 돌고, 때로는 솔라노라는 길로 나가서 경보로 한 시간 가량을 보냅니다.
보통은, 운전면허와 크레딧 카드, 그리고 열쇠에 아이팟셔플을 들고 나서는데, 모자를 꾸욱
눈썹까지 눌러쓰고 길거리로 나서자마자 귀에는 이어폰으로 아이팟에 저장된 이백여개의
음악을 무작위로 틀어넣습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숨이 차기까지 속도를 내면서, 또 이것저것, 생각들을 정리하고
고민할 것을 고민하고 계획할 것을 계획하며 그 시간을 채우고는 합니다.
그것이 나의 시간을 가장 알뜰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 급하게 나서느라고 아이팟을 놓고 나갔습니다.
습관성이라도 된 듯, 귀가 허전하고 심지어 무언가 불안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나선 김에
그 날만은 음악을 접어두기로 합니다..


사람의 오감 중, 가장 사람을 얽매는 것을 순서대로 꼽으란다면.. 아마도 시각이고 그 다음이
청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를 열어놓은 채로 뛰는 자신에게 스스로의 숨소리가 들리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 발 아래에서는 잔디가 바스락거립니다 .

귀가 열리는데 후각도 열리는 것일까.., 마른 풀의 내음과 농구코트에서 뛰는 아이들의
땀내음도 골을 넣은 환호성에 섞여서 감지되었습니다.
달려드는 날벌레의 환영사도 듣습니다.
더불어 그닥 반갑지 않은, 낡은 차 꽁무니들에서 내뿜는 매연냄새도 물론 매케하게 퍼지는
군요.. 쿵쿵쿵.. 불평하는 심장소리.
마주 지나치는 조거jogger 의 가벼운 끄덕임. 여름 이파리들이 비벼대는 소리.

내가 꽉꽉 차단했던 귀를 열고나니 온 세상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이니스프리가 내 집에서 멀고도 멀게 떨어진 어느 외딴 고도인 줄 알았습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굳은 결단을 내리고 자리를 걷어내고 벌떡 일어나 훌쩍 떠나가야
하는 그런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니스프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나의 곁에 있었습니다.
이니스프리는 늘 내 안에서 파도를 철썩이며 내가 들어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많이도 써대는 여러 문명의 이로운 기기들로 인해 - 그 전자파의 발생으로 인해 -
벌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휴대전화기를 내려놓고, 컴퓨터를 끄고, TV도 끄고..
벌들이 윙윙대며 분주히 꽃가루를 나르고 있는 내 안의 이니스프리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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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리

September 25, 2009

이 시는, 작년 케이트 윈슬렛이 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영화, The Reader 에서 소년기의 마이클이
하나에게 읽어준 시였지요..
글을 읽지 못하던 하나가 그 시를 들으면서 눈빛이 뽀얗게 되던 기억이 납니다.

이니스프리.. Innisfree, Inn-is-free
아, 긍까.. 거기는 일단, 숙박걱정은 없단 뜻인가... ^^;;
이런 써늘한 조크는 그만두고.

이니스프리섬은, 예이츠의 소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이면서 이후에 그가 묻힌 곳이기도 한
아일랜드 북부 슬라이고 지방의 작은 호수, Lough Gill 에 떠있는 조그만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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