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Apr, 2008

황지우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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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13도(十三度)
   영하(零下) 20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5도(五度)
   영상(零上)13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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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기온의 봄입니다..

노랬다가 하얬다가. 밝았다가 흐렸다가. 달력의 봄은 꽃피우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말 잘 듣는 봄꽃들이 우르르 봄 속으로 나왔다가 된서리 맞고 죄~~감기에 걸린 판입니다.

내일은 슈베르트의 D장조 미사곡, 키리에/글로리아/상투스/베네딕투스/아뉴스데이..
전 곡을 불러야 합니다.. 수시로 High A를 넘나드는 높고높은 음에 질려서 아주 진저리를 치며
연습을 했습니다,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이글이글) 불타면서.

그러다가..
황지우 시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그러다보면, 그렇게 계속 하다보면.. 천천히, 서서히
아아, 마침내,끝끝내 우리도 그렇게 하얗~게 꽃피울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 올 봄은 그렇게 하얀 꽃 떨치고 차려입은 나무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주 힘이 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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