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Jun, 2007

함민복 - 산

보시리 조회 수 7781 추천 수 0 목록


□□□□□□□□□□□□□□□□□□□□□□□□□□□□□□□□□□□□□□

    산

   당신 품에 안겼다가 떠나갑니다
   진달래꽃 술렁술렁 배웅합니다
   앞서 흐르는 물소리로 길을 열며
   사람들 마을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삶에 지치면 먼발치로 당신을 바라다보고
   그래도 그리우면 당신 찾아가 품에 안겨보지요
   그렇게 살다가 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수 있겠지요


□□□□□□□□□□□□□□□□□□□□□□□□□□□□□□□□□□□□□□

할아버지께서 제가 떠나오고 그 이틀 후 다시 혼수상태에 계시다가
어제, 한국 시간으로 6월 7일 아침 7시 20분에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간의 고통을 생각할 때, 이제까지 그 해방만을 기다려오셨을지도 모르나,
마치, 당신께서 무릎에 앉혀 키워온 막내 손주를 기다리기라도 하셨다는 듯,
그 몇 일 활짝 깨어 계시면서, 저를 만나주시고, 제 인사도 받아주셔서
얼마나 감사로운지 모릅니다..

마지막 순간에 버티어주신 것까지 사랑이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꽃밭에도 갔습니다.

할부지께서 돌아가신 이 서러운 시간에 그럴 수 있는가 싶다가도,
낙원에 가신 할부님 모습 떠올리며, 내가 무엇을 서러워하랴 싶어서,
산에도 바다에도 꽃밭에도 갔습니다..

또다시 바닷가엔 미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강하디 강한 바람 속에 마음의 사소한 슬픔의 찌꺼기를 날려보내고
마른 냇물에 쿠르릉쿠르릉~.. 물 쏟아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130 유지소 - 박쥐 file 보시리 2007-07-28 7093
129 김정란 - 기억의 사원 file [2] 보시리 2007-07-11 6957
128 기형도 - 바람은 그대 쪽으로 file 보시리 2007-06-25 15789
127 홍윤숙 - 과객 file 보시리 2007-06-18 6866
» 함민복 - 산 file 보시리 2007-06-08 7781
125 오상순 -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 [3] 보시리 2007-06-06 13824
124 신달자 - 불행 보시리 2007-06-03 9009
123 김정란 - 눈물의 방 보시리 2007-06-01 6833
122 김용택 - 그 강에 가고 싶다 file 보시리 2007-05-30 9682
121 함민복 - 긍정적인 밥 보시리 2007-05-27 7679
120 문병란 - 돌멩이 (반들반들) 보시리 2007-05-27 7220
119 천상병 - 나무 (기다, 아니다) file [3] 보시리 2007-05-24 7289
118 천양희 - 좋은 날 보시리 2007-05-21 6730
117 장정일 - 내 애인 데카르트 보시리 2007-05-17 6530
116 유지소 - 별을 보시리 2007-05-14 6230
115 박성우 - 도원경(桃源境) 보시리 2007-05-11 14142
114 천양희 - 외딴 섬 보시리 2007-05-09 6690
113 안도현 - 섬 [1] 보시리 2007-05-06 6958
112 박남수 - 아침 이미지 보시리 2007-04-30 6722
111 문정희 - 고독 보시리 2007-04-29 6972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