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Jun, 2005

나희덕 - 오 분간

머시라고 조회 수 12182 추천 수 0 목록
□□□□□□□□□□□□□□□□□□□□□□□□□□□□□□□□□□□□□□

오 분간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 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2004), 14-15페이지 中

□□□□□□□□□□□□□□□□□□□□□□□□□□□□□□□□□□□□□□

잠에서 깨어나
세면장 향한다.
삐그덕 삐거덕
세면대 앞에서
하품하는 새
바라본 거울
그 속의 나는
어제와 하루차.
가끔은 어린 내가,
어느 날엔 늙은 내가
아침인사 건네오면
반가웠을까 나는.
방심하는 새
맺히는 방울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70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12] 보시리 2005-04-21 58569
169 서안나 - 동백아가씨 보시리 2010-03-19 57711
168 이문재 - 노독 보시리 2010-02-28 55313
167 이문재 - 농담 [2] 보시리 2009-02-17 52359
166 정현종 - 방문객 file 보시리 2011-03-04 41635
165 황지우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file [11] 보시리 2008-04-26 33636
164 정호승 - 미안하다 file [4] 머시라고 2004-12-17 30324
163 김옥림 -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4] 머시라고 2005-06-23 27178
162 도종환 - 우기 보시리 2005-05-09 25139
161 최원정 - 산수유 [2] 보시리 2010-03-13 24382
160 장이지 - 용문객잔 file 보시리 2009-03-22 21015
159 고정희 - 상한 영혼을 위하여 [3] 보시리 2005-02-19 19965
158 박제영 - 거시기 보시리 2010-03-20 19803
157 박노해 - 굽이 돌아가는 길 보시리 2005-05-14 18889
156 이정하 - 사랑의 우화 머시라고 2003-04-09 17546
155 원태연 -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머시라고 2003-04-02 17266
154 유재두 - 풀은 풀이라고 불렀으면 file 보시리 2011-10-24 17112
153 정호승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file [1] 머시라고 2004-04-03 17020
152 예이츠 -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file [1] 보시리 2009-09-24 16965
151 최형심 - 2250년 7월 5일 쇼핑목록 file [2] 보시리 2008-10-13 16963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