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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이태백 형님과 맞짱뜨고 계실지 모른다.그대 뒷모습 - 정채봉

그러고 보면 황정하님이 물었던 '머시라고'의 사연은 거짓 답변을 한 것이 되어버린다. 한메일 이전에 유니텔에서 '머시라고'라는 한글아이디를 사용했던 것 같은 기억이 이 책에서 되살아 났다. 유니텔에서 사용한 후로 한메일에서는 한글아이디가 안되어 '머시라고'의 영문 표기를 놓고 고민했던 것 같다.ㅋ

여튼 '난나'라는 아이디를 가진 모령의 여인(?) 소녀(!)로 하여금,, 지금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는 사춘기?시절의 그럴듯한 추억 하나를 가지고 내가 사랑받는 존재일 수 있다는 따뜻함을 안고 살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 말년, 무료함을 달래려 펼쳐든 신문에서 '정채봉'이라는 단어를 부고에서 찾아냈을 때, 내가 들고있는 책이,, 산 자의 책에서 죽은 자의 책으로 바뀐 것을 기념하는 기적소리가 도플러효과를 만땅 발휘하였고, 책에 '근조(謹弔)'를 붙여야할까 말아야할까, 붙일려면 한문으로 적고 싶은데, 옥편 하나 없는 내무반에서 컴퓨터가 있는 행정반에 다녀와야할까,, "참,, 맞다.." 하며 다이어리 뒷편 생활한자에서 '근조'를 찾아놓고 책을 펴니, 책에는 이미 내가 적어놓은 '근조'의 흔적이 있었고,, '내가 왜 이러지?' 했던 어지러운 기억이 있다.

쓸때없는 가스 낭비하며 후라이팬을 너무 오래 가열한 것 같다. <초승달과 밤배>라는 동화책이 '난나'라는 소녀의 상황과 대사를 통해 감정을 울켝이게 했다면, <그대 뒷모습>은 가벼운 수필처럼 다가오다가 애틋함으로 치고 빠지는 파도처럼 아름다운 비유가 돋보이는 것 같다.

"참깨를 털듯 나를 거꾸로 집어 들고 털면 소소소소 쏟아질 그리움이 있고,"가 적힌 머리말에서부터 나를 사로잡기 시작하여, "소주 속에서 맴돌고 있는 흰구름 한 점을 발견했을 때.", '잃어버린 시간'의 반은 꿈이 되어 떠오를 때가 많다는 둥,, 찬물을 받쳐 든 바가지에 별 하나가 돋았는데, 그것이 버들잎인 양 천천히 별을 불면서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와 아래 두 사연은 작은 책의 삼십여 페이지도 넘겨보지 못한 손가락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정지시켜 버렸다.

[사연1] 술에 취에 돌아온 날 밤,, 한기가 느껴져서 눈을 떴더니 저만큼 윗목에 홑이불이 저 혼자 밀려가 있어 끌어당겨는데, 아무리 홑이불을 끌어당겨도 올라오지 않아서 정신을 차리고 가까이 가 봤더니 그건 홑이불이 아니라 달빛이었다. (숨 한번 멎고,,)

[사연2] 들녘의 싱싱한 모두를, 평화를 정지시키고 싶은 순간, 나도 클로버 꽃이라도 하나 따 들까 하다가 그만 뒀다는데, 그 이유가 지금 여기에서 아무리 작은 클로버 꽃일지언정 축을 낸다면 들의 이 수평이 기울어질 것 같은 염려가 생겼다

이 대목에서 나는 건물이 기울어버리지 않을까하여 키보드 두드림 하나, 책장 넘기는 손 하나,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조심해졌고,, 내가 이쪽으로 움직이면 누군가 그 시간에 반대로 움직여주어 우주의 균형이 지켜져 왔던 것은 아닌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책은 크기가 작고, 머리말 빼고 255페이지 분량이다. 30페이지까지의 느낌만 적어봤는데, 이러단 끝이 없을 것 같아 줄인다 ^^.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